퇴직하고 아내와 약속한 게 하나 있습니다. "매일 같이 걷자, 하루 만 보."
우리 아파트는 문만 나서면 바로 산책로로 이어집니다. 걷기에 이만한 환경이 없죠. 그런데 해 보니 만 보는 생각보다 잘 안 채워졌습니다.
그래서 만 보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, 연구로는 몇 보면 되는지 찾아봤어요. 그리고 우리 부부가 요즘 실제로 걸음을 늘리는 방법도 같이 정리해 둡니다.
먼저 결론부터
· 만 보는 1960년대 일본 만보계 상품 이름에서 나온 숫자로, 연구로 정한 기준이 아닙니다
· 연구로는 60세 이상 6,000~8,000보, 60세 미만 8,000~10,000보쯤부터 효과가 더 늘지 않고 완만해집니다
· 2025년 종합 분석에서는 하루 7,000보만 걸어도 2,000보보다 사망 위험이 약 47% 낮았습니다
· 우리 부부의 방법: 운동하러 나가기보다 볼일을 걸어서 보기
문 열면 산책로인데, 만 보는 왜 어려울까
아파트 단지를 나서면 길이 바로 산책로로 이어집니다. 신도시 가운데를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 양쪽으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길게 나 있어요.


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나갔습니다. 그런데 날씨가 궂은 날이 있고, 이런저런 볼일에 시간을 뺏기는 날이 있고, 당일치기 나들이를 다녀오는 날도 있더라고요. "매일"이라는 약속은 그렇게 조금씩 느슨해졌습니다.
게다가 실개천 산책로를 부부가 한 번 왕복하면 5km 정도인데, 이걸 걸어도 만 보가 다 안 채워집니다. 만 보를 채우려면 하루에 한 시간 반 넘게 걸어야 하는 셈이에요. 환경은 최고인데도 매일 만 보는 쉽지 않았습니다.

하루 만 보, 어디서 나온 숫자일까
찾아보니 만 보는 연구에서 나온 숫자가 아니었습니다. 1960년대 일본의 한 회사가 만든 걸음 수 측정기의 이름이 '만보계(万歩計)'였고, 이 이름이 그대로 목표처럼 퍼졌다고 해요. 도쿄 올림픽 무렵 걷기 붐과 함께 팔린 상품이었습니다.
하버드대 연구자 이민 리(I-Min Lee) 교수도 그 숫자가 처음 나왔을 때는 뒷받침하는 연구가 없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. 쉽게 말해 기억하기 좋은 숫자였던 거죠.
연구로 보면 하루 몇 보면 될까
최근 연구들은 만 보보다 조금 적은 숫자를 이야기합니다. 두 가지를 표로 정리했어요.

2022년 연구(Lancet Public Health, 15개 연구 약 4만 7천 명)에서는 걸음이 많을수록 사망 위험이 낮아지다가, 60세 이상은 6,000~8,000보, 60세 미만은 8,000~10,000보쯤에서 그 효과가 더 늘지 않고 완만해졌습니다. 걷는 속도보다 하루 전체 걸음 수가 더 중요해 보였다는 점도 눈에 띄었어요.
2025년 종합 분석(Lancet Public Health, 57개 연구)에서는 하루 7,000보를 걷는 사람이 2,000보를 걷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약 47%, 치매 위험이 약 38% 낮았습니다. 그리고 7,000보를 넘어서면 더해지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고 해요.
50대인 저희 부부에게는 "만 보를 못 채웠다고 실패한 게 아니다"라는 말로 들렸습니다. 다만 이건 걸음 수와 건강의 관련성을 본 연구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, 무릎이나 허리가 불편하다면 걸음 수를 갑자기 늘리기 전에 의료기관과 상담하시는 게 좋습니다.
10월 27일, 빵 사러 나갔다가 9,328보
그러다 10월 27일 걸음 수를 보고 웃음이 났습니다. 운동하겠다고 마음먹은 날도 아닌데 9,328보가 찍혀 있었거든요.
그날 저녁, 아내와 산책 겸 오랜만에 맛있는 빵을 사러 산책로를 따라 중심상가까지 걸어갔습니다. 마침 큰딸에게서 초밥이 먹고 싶다고 연락이 왔고, 운동하고 있던 막내까지 불러서 네 식구가 오랜만에 회전초밥집에 갔어요.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.
밥을 먹고 막내는 영어학원으로, 자전거를 타고 왔던 큰딸은 먼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. 저와 아내는 다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고요.

휴대폰 걸음 수 화면을 보면 걸음이 저녁 5시부터 8시 사이에 몰려 있습니다. 운동복을 입고 나간 게 아니라 빵 사러, 밥 먹으러 걸어서 오간 것만으로 이만큼 걸은 거예요. 휴대폰에 목표를 8,000보로 정해 두었는데, 이날은 넉넉히 넘겼습니다.
우리 부부가 걸음을 늘리는 방법
매일 만 보는 못 지켰지만, 대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.
① 볼일은 산책로로 걸어서
중심상가에 가거나 뭘 사러 갈 때는 되도록 산책로를 따라 걸어갑니다. 따로 운동 시간을 내지 않아도 걸음이 쌓여요.
② 산책로 중간 도서관에 들르기
산책로 중간에 도서관이 있어서, 걷다가 들러 책을 보기도 하고 빌려 오기도 합니다.

③ 운동보다 대화하는 산책
솔직히 저희 걷기는 숨이 찰 만큼 빠른 운동이라기보다 산책에 가깝습니다. 대신 걸으면서 이야기를 훨씬 많이 하게 됐어요. 집에서는 잘 안 나오던 이야기가 걷다 보면 나옵니다.

④ 길게 걷는 나들이
평소에 못 채운 걸음은 나들이로 채웁니다. 얼마 전 다녀온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잔도길은 2시간 가까이 걸었는데, 산책 겸 운동으로 딱 좋았어요.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따로 정리하겠습니다.
자주 묻는 것
Q. 하루 만 보를 꼭 걸어야 하나요?
연구로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. 60세 이상은 6,000~8,000보, 60세 미만은 8,000~10,000보쯤부터 효과가 완만해졌어요. 지금 걷는 양보다 조금씩 늘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.
Q. 빨리 걸어야 효과가 있나요?
2022년 연구에서는 걷는 속도보다 하루 전체 걸음 수와의 관련성이 더 뚜렷했습니다. 천천히 걷는 산책도 걸음 수로 쌓입니다.
Q. 한 번에 몰아서 걸어도 되나요?
저희처럼 볼일 보며 나눠 걸어도 하루 걸음 수로 함께 쌓입니다. 다만 평소보다 갑자기 많이 걸으면 무릎과 발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조금씩 늘려 가세요.
정리
하루 만 보는 좋은 목표지만, 못 채웠다고 실망할 숫자는 아니었습니다. 저희 부부는 "만 보" 대신 "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걸어서"로 목표를 바꿨어요.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만 보 가까이 걷는 날이 생겼습니다.
11월부터는 휴대폰으로 걸음 수를 기록해서, 한 달 동안 실제로 얼마나 걸었는지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.
※ 2026년 10월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. 연구 출처: Paluch 외, Lancet Public Health 2022 · Ding 외, Lancet Public Health 2025. 건강 상태에 따라 알맞은 걸음 수는 다를 수 있으니 의료기관과 상담하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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